입대 날의 공기는 무겁다
17년 9월 5일 양주에 있는 25사단 신교대에 입대했다. 당일 새벽 2시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자야 한단 걸 알고 있었지만, 잠이 도통 오지 않았다. 억지로 눈 감고 얕은 잠을 잤던 것 같다. 새벽 6시에 부모님이 깨워주셨다. 전혀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마치 주말에 맘먹고 늦잠 자려고 했으나 7시에 깬것만 같은 이 느낌. 엄마가 아침밥 먹으라고 했다.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전혀 먹고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이 아침밥은 훈련소기간 내내 "먹고 올걸"라며 계속 생각났고, 첫 휴가였던 신병휴가 전날 집에 전화해서는 김치찌개와 계란말이가 먹고 싶다고 조를 정도였다.
아무튼 집은 대구이고, 훈련소는 경기도 양주에 있으니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왜 그렇게 집을 나서기가 싫던지. 마치 영영 못 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빠차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서울로 향했다. 중간에 모닝똥도 눌 겸 해서 휴게소에 들렀다. 화장실 갔다 오고 나서 우동을 시켜먹었다. 엄마 아빠는 아침밥 먹었다고 나 혼자 우동을 먹었다. 부모님은 우동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셨고, 솔직히 부담스러웠다. 빤히 쳐다보는 부모님 얼굴을 보기 어려워서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는데 마침 위장색 코란도에서 군인 몇 명이 내려서 앞쪽 테이블에서 라면을 시켜먹었다. 참 기분 묘했다.
다시 달리고 달려 양주에 도착해서는 25사단 신교대 근처에 있는 돼지갈비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자리를 잡고 앉으니 나와 똑같이 입대하는 또래 친구들이 옆이고 앞이고 뒤에 꽉 찼다. 그렇게 우울한 분위기의 돼지갈비집은 처음이었다. 꾸역꾸역 입에 갈비라는 음식을 집어넣었다. 콜라였는지 사이다였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탄산음료를 다 마시지 못하고 남겼다. 먼저 입대한 친구들이 그렇게 탄산이 먹고 싶었다던데, 이때까지만 해도 군대 다녀온 사람들이 으레 하는 우스갯소리 정도로만 이해했었다. 815콜라를 쳐마시기 전까지는....
신병교육대대에 들어가다.
아무튼 입소식이 오후 2시였으니 아마 1시쯤에 신교대에 출입했을 거다. 조교들이 도로 통제하는 거 지켜보면서 진짜 왔구나 싶었다. 신교대 언덕길을 올라서 법당 앞 자갈로 된 주차공간 앞에 차를 세우고 비룡관? 상승관? 이름이 기억이안 나는데 강당 쪽 계단을 내려가서 대연병장 탱크 옆 천막으로 갔다. 이름 쓰고목걸이 받고, 손등에 번호를 적어준다. 신교대본관 쪽으로 가니 병무청이었는지 어디 교회였는지 여행용 세면세트를 하나씩 줬다. 나중에서야 느낀 거지만참 이거라도 없었으면 어쨌나 싶다.
본관에 들어가서 1층에 강당이 있다. 군악대가 연주하고 있었고 나랑 부모님이랑 의자에 앉았다. 앞에 낙서가 되어있었는데 온통 임시완 이야기뿐이었다. 아빠가 "임시완도 여기입대했나 보네"라고 하셨고 나는 "그런가 보네"라고 대답했다.
중대장이 수료 날은 언제고, 다음 카페주소는 이거고, 사진 보려면 어떻게 가입해야 하고, 이것저것 설명한 뒤 소연병장으로 나갔다. 부모님 옆에멀뚱멀뚱 서있는데 입소장병들은 앞으로 나오랜다. 나가서 국민의례, 애국가 부르고, 처음으로 경례란 걸 했다. "단결!" 그러고 나서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말하랜다. 나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라 부모님께 사랑한단 말을 제대로 해본 적이없었다. 유치원 때까진했었나? 그것도 확신이 없다. 17년 9월 5일. 참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나는 이 날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처음으로 말했고, 처음으로 부모님의 눈물을 봤고, 처음으로 부모님의 눈물로 나도 눈물을 흘린 날이었다.
본관 뒤로 단체로걸어 들어가는데 어찌나 발걸음이 무겁던지…. 뒤로 가서 서있으니 손등에 써진 번호순대로 줄을 서고 차례로 통제받았다. 맨 처음 임시완의 낙서가 있던 강당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서 개인 인적사항이랑, 정신건강검사표 작성했다. '나는 메뚜기의 이름을100여 가지 이상 알고 있다' 참 특이한 문항이 많았다. 중간중간 운전병 모집한다고 부르는데 1종 보통 면허가 있었지만 운전을 많이 해본 것도 아니라서 나가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안 나가는 게 맞았다.
이것저것 하고 처음 생활관에 들어갔다. 거기서 의류대 받고 창고로 가서 생활복, 면티, 슬리퍼, 세면도구, 휴지, 속옷 등등을 받았다. 바로 저녁을 먹었는데 제육에 상추쌈이 나왔다. 역시 대충 먹고다 버렸다. 생활관 들어와서 의류대 정리하고 대충 청소하고, 조교 통제받아서 간이 점호받고, 취침. 포단 깔고 모포 덮고 자는데 꿈인 것 같았다. 아니 꿈이길 바랬다. 당시에는 꿈이었어야만 했었다. 옆사람 이름도 모른 채 다들 모여서 같은 방향으로 누워있었고, 기침소리와 코고는 소리만 들렸다. 총 617일 중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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