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에서는 훈련병들의 종교권을 보장해주기 위해 매 주 일요일마다 종교활동 시간을 배정해준다. 보통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조교가 종이 하나 들고와서 어느 종교로 갈껀지 물어본다. 번호순대로 "기독교입니다","불교입니다","안가겠습니다" 말을하면 된다. 그러고나서 일요일 아침점호가 끝난 뒤 연병장에서 바로 종교별로 집합을 한 뒤 밥을 먹으러 간다. 이 날만큼은 생활관 단위가 아닌 종교단위로 움직이고 집합한다.
밥을 먹고나서 생활관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집합방송이 나오면 행정반 앞 복도에 줄을 선다. 그러고나서 조교통제에 따라서 교회, 법당, 성당으로 간다. 종교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은 생활관에서 대기한다. 못했던 샤워나 세탁기를 돌려도 좋다. 두발정리도 하면 좋다. 잠을 자도 좋다. 하지만 보통 종교활동을 가면 초코파이와 오렌지주스같은 간식거리를 주기 때문에 항상 단것이 부족한 훈련소에서는 무조건 참석하는게 좋다.
나는 무교론자다. 기독교 재단의 어린이집과 고등학교를 나왔고, 매주 있는 교목시간도 열심히 참여했었지만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 할머니를 따라서 절에도 많이 다녔지만 불교를 믿지 않는다. 천주교는 나와 연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훈련소 첫주에 종교를 어디갈까 참 고민됐다. 다행히도 관물대 아래에 예전 기수들이 남겨놓은 낙서들이 도움이 된 것 같다. 기독교는 몇주차에 싸이버거를 준다, 불교는 마지막주에 짜장면준다 같은 대부분 음식과 관련된 낙서들이 가득했다. 나는 훈련소에서 조금 친해진 동기 몇명과 함께 불교를 선택했다.
25사단 법당은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한다. 올라가면 영점사격장 옆에 조그마한 법당이 있다. 활동화를 벗고 맨발로 장판위에 앉아있으면 된다.
스님이자 군종장교는 상당히 특이한 사람이었다. 지금도 25사단에서 근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도 상당히 나긋나긋한데 특이하다. 아무튼 특이하다. 첫 날 자기는 욕심, 속세에 관심없다고 느릿느릿하게 말하더니 옆에 놓여있던 스타벅스 종이컵을 들면서 대뜸 우리들한테 "이거 커피같지?" 라고 묻는다. 우리들이 "그렇습니다" 라고 하니 "응 사실 이거 물이야" 이런다. 사회였으면 무시했을 이런 사소한 조크가 훈련소라는 특별한 환경에 있으니 너무 재밌었다. 박수도 손바닥이 아닌 손마디, 주먹으로 친다. 혈액순환에 좋다나. 그래서 매 주 불교에 처음오는 훈련병 동기들은 우리들이 자연스럽게 손마디로 박수치는 모습을 보며 당황해했다. 원래 허무개그 이런걸 안좋아했는데 이 스님때문에 허무개그가 너무나도 좋아졌다. 왜 웃긴지는 모르겠는데 뻔뻔스럽게 그런 드립을 치는 스님이 너무 웃겼다.
가장 중요한 간식!. 내가 있던 기수가 추석때문에 7주를 훈련소에서 보냈는데, 거의 매번 초코머핀과 카프리썬을 줬다. 마지막주에 짜장면? 그런거 없다. 다만 남는 간식들은 훈련병들한테 다 줬다. 한번은 초코파이랑 abc초콜렛을 몇박스씩 들고와서는 많이 남았으니 그걸 다 나눠줬다. 나랑 생활관 동기들은 활동복 주머니에 쑤셔넣은 뒤 생활관 복귀해서 다 나눠눴다.
기독교는 4주차쯤에 위문공연이 오는데 이때 싸이버거를 나눠줬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다. 매주 종교를 다르게 선택가능하니, 위문공연이 온다는 떡밥이 있으면 무조건 기독교로 가자.
종교활동을 하면 군종병들이 사진을 찍어서 사단 신교대 카페에 업로드한다. 반대로 사회에 있는 가족 또는 친구가 영상편지를 찍어서 올리면 종교시간에 틀어준다. 편지도 수거해서 우체통에 넣어준다. 지금 생각해보니 훈련병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사단 군종병들이 참 고생했구나 싶다.
훈련소에서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감사하다. 부모님과 친구의 짧은 편지 한 줄, 식사시간에 나오는 부식 하나, 종교활동, 이동하면서 잠깐씩 들리는 지통실 TV의 YTN 뉴스 한 줄 마저 감사하다. 그만큼 훈련소는 사회단절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크고, 훈련도 힘들다. 종교활동이 강제는 아니지만,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종교가 없더라도 꼭 참석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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