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 그냥 군 생활을 되돌아볼 겸 정리하고 싶었다. 밖에 나와서 알바도 하고 이것저것 해보니 군 생활이 경험적으로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루라도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을 때 정리를 하고 내가 경험하고 느낀 바를 저장해두고 싶었다.
입소장병
입대하고 첫 주는 '훈련병'이 아니라 '입소 장병'이라고 부른다. 첫 주 동안 신체검사하고, 소대장과의 대화를 통해 문제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걸러낸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훈련병 번호는 계속해서 바뀌고 자리 또한 바뀌며 심지어는 생활관을 옮기는 경우도 생긴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사람은 9월 한여름에 라이더 재킷에 중절모 쓰고 온 눈이 퀭한 남자였다. 이튿날 입고 온 옷을 장정 소포에 싸서 집으로 보내는데 이 사람은 보낼 집도 가족도 없다고 했다. 소대장은 기존에 살던 곳으로 보내면 되지 않냐고 했지만, 이 사람은 기어코 보내는 걸 거부했다. '거부' 군대에서는 '거부'란 단어가 참 낯설게 느껴진다. 특히 상관의 말에 거부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아무튼 소대장이 이 사람이랑 상담을 몇 번 하더니 결국에는 퇴소 조치 시켰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본드를 하던 사람이었고, 소대장이 보기에도 참 불안해 보였단다.
생활
첫 주가 지나가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인원들은 수료까지 끝까지 가는 게 확정된 거나 다름없다. 이쯤 돼서 다들 말을 트고 친해지기 시작한다. 저녁 먹고 '소중한 나의 병영일기' (이하 소나기, 난 왜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가…)를 쓰는 시간에 조교가 없는 틈을 타서 자기소개를 한 명씩 했다. 이름은 뭐고 몇 살이고 어디서 왔고 학교는 어디서 다니는지, 별명은 뭐였는지도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교들도 일부러 잘 안 들어왔던 것 같다. 우리끼리 빨리 친해지고 유대감을 쌓는 게 부대 입장에서는 좋을 테니깐. 25 사 신교대는 생활관 구조가 특이하다. 두 개의 생활관 가운데를 허물고 억지로 합친 느낌이다. (생활관이 ㄷ자 구조로 되어있다) @생활관 1소대 2소대 이렇게 나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같은 생활관이라도 소대가 같아야 친했지 옆 소대끼리는 친한듯하면서도 조금 먼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이 시기에는 기본 군인 자세부터 배우는데, 바른 자세, 바른걸음 연습을 진짜 엄청 시킨다. 걸음 하나 맞추는 게 그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조교의 왼발 구령에 맞춰서 하나 둘 셋 넷 외치며 걸어가는데 평생 그렇게 걸어본 적이 없었으니 목이랑 어깨도 아프고 앞사람 발도 자꾸 밟고 그랬다. 그래도 조금만 익숙해지면 크게 문제없다. 간혹 같은 발 같은 손이 나가는 사람도 있었는데, 얘는 수료할 때까지 안 고쳐지더라. 세상에 이런 애가 있나 싶었다.
신체검사와 예방접종도 실시한다. 민소매티 하나 입고 단체로 줄 서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진짜로 군대에 왔구나 싶다. 개인생지부도 작성한다. 가족관계부터, 친구관계, 전과 기록, 질병, 군 생활 목표, 다짐, 가정 상황, 문신 유무 사실상 나의 대한 모든 걸 작성하라고 시킨다. 생지부는 전입 부대의 간부들이 전입 신병의 신상을 파악할 때, 혹시나 사고가 났을 때 가장 먼저 펼치게 될 물건이니 신중하게 작성하자. 신병 가이드북이라고 해서 손바닥만 한 책자도 나눠준다. 여기에는 앞으로 훈련하게 될 내용들이 빼곡하게 적혀있으며 일정, 군가들이 수록되어 있다. 소나기, 편지 쓰는 시간이 남아돈다면 정신전력 내용을 외우고 또 외워서 포상휴가를 노리자.
화장실, 라면
배변. 솔직히 이게 제일 걱정스러웠다. 다행히도 나는 3일차에 시원하게 누고 나니 그 뒤로는 괜찮았다. 힘들었던 건 배에 가스가 차도 내 마음대로 배출을 못한다는 거다. 배에선 가스 때문에 찌릿찌릿한데 남들 있는 자리라 꾹 참고 있어야 했다. 불침번 때 화장실 참 많이 갔다. 당직 병도 졸고 있을 시간이니 전우조 없이 혼자 가서, 편안하게 볼일 볼 수 있었다. 한 번은 불침번 도중 생활관 전우가 화장실에 간다고 해서, 전우 조로같이 화장실에 따라갔다.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행정반에서 당직병(조교)가 양은 냄비를 들고 나오는 게 아닌가. 화장실 걸레 빠는 곳에 가서 설거지를 하는데, 그 잠깐이지만 라면 냄새가 너무 좋았다. 끓인 라면. 휴가 나가면 꼭 먹고 들어오겠다고 다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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