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랬듯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시대를 만들었다. 6.25 전쟁 이후 베이비붐 세대들은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을 이끌어 한반도 역사상 거의 최초로 궁핍하지 않은, 굶어 죽지 않는 시대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소위 '386세대', 운동권이라 불리는 청년들이 87년 민주항쟁을 통해 대한민국을 독재의 수령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들의 자식들인 '에코세대'들이 04년 노무현 탄핵 사태 당시 주축으로 나서며, 이전 운동권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구도를 만들어내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2019년 지금. 새로운 시대를 만들었던 그 세대들은 어디로 가고 있으며, 또 다른 새로운 세대는 어디에 있는가.
아직도 과거에 멈춰있는 '그들'
주말 간 조국수호집회를 보며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정말 추해지기 전에 기성세대들이 스스로 물러나는 게 맞지 않나 싶었다. 청년층이 기성세대를 욕하고, 기성세대는 '요즘 젊은것들'을 욕하는 건 고대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고 한다. 인간이라면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는 것이 당연하다. 자기가 이루어낸 것들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에서 나오는 하나의 방어기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성세대들은 어쩔 수 없이 다음 세대들에게 자기들이 이루어 낸 것들을 물려줘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추하게 물려줄 것이냐, 명예롭고 멋있게 물려줄 것이냐 하는 문제는 순전히 본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이 그렇다. 좁디 좁은 방구석에서 어쩔 수 없이 90년대생을 주축으로 하는 일명 'Z세대'들에게 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 세대들이 자리를 잡은 공간만큼 그 윗세대들의 자리 공간은 좁아질 수밖에 없고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87년 독재를 끝냈던 386세대와 04년 노무현을 지켰던 그 세대들이 '조국 수호집회'를 필두로 다시 뭉치고 있다. 역사상 큰 발자취를 남긴 이들이 다시 모인다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긴 하다. 그들은 이 사회의 '기성세대'가 되면서 젊었을 때의 정의, 가슴 뜨거움은 사라지고 오직 편견과 아집만이 남았다. 조국 사태의 근본적인 문제는 '정의'의 문제다. 그동안 트위터로 온갖 정의로운 말들을 쏟아냈던 자가 사실은 뒤에서 온갖 특혜를 악용하고, 공정하지 못한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 그리고 적폐 청산을 내세운 문재인 정권에서 어떻게든 그를 안고 가려는 모습에 국민들은 특히 젊은 세대들이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기성세대들은 '정치' 문제로 프레임을 가두었고, 조국을 욕하면 적폐고, 조국수호, 검찰개혁 구호를 외치는 것이 오히려 '정의'가 되어버렸다.
'386'들은 아직도 1987년 6월에 멈춰있고, 에코세대들은 아직도 2004년에 멈춰있다. 자신들이 항상 옳았고, 자신들의 항상 정의였고, 자신들이 독재와 불의에 맞서 역사적인 변곡점을 만든 장본인들인데 왜 자신들이 비난받는지도 모르는 상황, 지금 20대들은 왜 자신들과 반대일까하는 생각, 늘 그래 왔듯이 자신들을 비난하면 적폐고 불의라고 외치는 그들의 반응도 전혀 이상한 게 아닐지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의 설훈 최고위원이 올해 초 "지금 20대들은 민주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게 아니냐"라는 발언도 이런 사고방식에서 나오지 않았나 싶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의 20대 모습에서 볼 수 있었던 공정, 자유, 민주, 정의로운 눈빛은 사라진채,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꼰대의 눈빛이 되어버린 그들의 현재 모습은 추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이다.
제발 우린 저렇게 늙지 말자, 다짐 또 다짐
물론 지금 우리 세대들도 나중에 사회에서 자리잡고, 기성세대가 될 것이며, 언젠가는 그들의 권력을 놓아주고 미래세대에게 넘겨줄 시기가 올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금처럼 반발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마르크스가 변증법을 사용해 자본주의는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필연적 과정이라고 주장했듯이, 이 사회가 좀 더 나은 사회로 진보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이 더 나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 거쳐야 할 당연한 순서인 것을. 다만 희망을 가져본다면 지금 우리 세대들이 '꼰대 문화'를 비판하며 '우린 곱게 늙자'며 자성적인 유머를 주고받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시대를 거부하고 발악하는 지금 모습을 보며, 우리는 저렇게 늙지 말자고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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